인도 미술이라고 하면 대부분 고대 종교 미술, 즉 역사적 유물이나 유적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불교, 자이나교, 힌두교의 사원, 조각, 벽화 같은 것들이지요. 그런데요, 인도인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인도 미술을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근대 미술이라고 답한다고 합니다.
국내에는 아직까지 인도의 근대 미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지요. 오늘은 인도 근대 미술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벵골 아트 스쿨', 그리고 근대 미술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여류화가 '암리타 쉐르 길'에 대해서 소개해볼까 합니다.
[인도 엘리트 벵골인]
인도 근대 미술은 영국 식민 시절이던 1940년, 당시 동인도회사가 위치한 캘커타를 중심으로 시작됩니다. 캘커타, 현재 콜카타라 불리는 이곳은 인도에서도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유명한 웨스트벵골州의 주도인데요, 벵골인들은 타 지역인들보다 개방적인 특성 탓에 당시 특권층들에 허용되던 교육의 기회도 비교적 보편적으로 보급되었고, 일찍이 여성들도 자유로운 사회 참여가 가능했죠. 이에 자연스럽게 예술, 문학, 음악 등이 일찍 꽃피게 되었고, 벵골인들은 스스로 엘리트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됩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동양인이자 '기탄잘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바로 벵골州 출신이고, 훗날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센 또한 벵골인이죠.
[인도 근대 미술을 탄생시킨 타고르家 ]
이런 벵골은 영국이 인도 진출의 거점으로 삼은 이후 유럽 문물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되었고, 예술과 학문에서도 근대화가 빠르게 시작됩니다. 특히 미술 분야에 있어서는 영국인 미술교사 언스트 하벨과 아바닌드라나트 타고르가 혁신을 주도했습니다. 당시 캘커타 미술학교에서 이들은 서양 미술 형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인도의 정신적 세계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무굴 아트, 즉 무굴 세밀화 등의 기법을 살리는 방식으로 교수법을 개혁합니다. 또한 범아시아적 예술 모델을 확립하기 위해 일본의 예술과들도 연계를 시도하지요. 이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아바닌드라나트 타고르의 '바라트 마타'입니다. 어머니 인도라는 이 작품은 인도의 국가적 열망을 상징하는 물건을 들고 있는 젊은 여성을 힌두신의 모습으로 묘사한 아름다운 작품이지요. 아바닌드라나트 타고르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조카로, 형인 강가넨드라나트 타고르와 함께 이러한 미술 혁신을 주도합니다. 후에 라빈드라나트 시인도 고령의 나이에 그림을 시작하며 이들에게 힘을 더하죠. 이러한 혁신 미술 사조는 지역의 이름을 본따 '벵골 아트 스쿨'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자미니 로이, 무쿨 데이, 마니시 데이, 람 킨카르 베즈 등이 '벵골 아트 스쿨'의 대표 예술가들이지요.
[인도 국보, 암리타 쉐르길]
벵골 아트 스쿨과 나란히 인도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인물은 바로 암리타 쉐르 길입니다. 그녀의 대표작인 Three Girls 는 인도 국보로 지정이 되어있고, 수도 뉴델리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위치의 도로명에도 그녀의 이름이 올라있을 정도인데요, 유네스코에서도 2013년을 암리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로 지정하기도 하였습니다.
인도 시크교도인 아버지와 헝가리 유대교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1913년에 태어난 암리타는 어린시절을 부다페스트에서 보낸 뒤 프랑스 파리 에꼴 데 보자르에서 그림을 전공합니다. 졸업 후 1934년 인도로 귀국한 그녀는 이른 나이인 28세에 사망하기 전까지 화가로 짧고 왕성한 활동을 하였는데요, 서양의 예술 양식과 전통 인도 예술 양식을 혼합한 새로운 시도로 '근대 인도 예술의 개척자', 또는 '20세기 초반의 가장 위대한 아방가르드 예술가'라 손꼽히고 있습니다. 인도 전통 양식과 서양의 양식을 혼합한 작품, 여러 점의 자화상 그리고 실험적이고 열정적인 삶을 산 첫 여류화가라는 점에서 인도의 프리다 칼로라고도 불리기도 합니다.
[인도 미술시장 확대의 최대 공로자]
물론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대부분의 그림은 팔리지 않았는데요, 사후 그녀의 그림이 인도 미술 역사를 계속해서 갱신하며 위상을 높인 점에서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2006년 Village Scene이란 작품은 뉴델리에서 6,900만루피, 한화로는 17억원에 판매되어 당시 인도 미술 작품으로는 최고 금액으로 판매되었고, 이후 작품 가격은 지속 상승해 그녀 작품 중 최고가는 약 55억원까지 기록하게 됩니다. 물론 현재는 고아 출신 화가 프란시스 뉴튼 소우자의 작품이 2015년 약 78억원에 판매되며 인도 회화 중 최고가를 기록하고있지만, 인도 정부가 암리타의 작품은 해외로 반출 또는 판매되지 못하도록 규제를 하였음에도 놀라운 가격을 기록했다는 점, 인도의 미술 시장에 대한 관심을 크게 확대시켰다는 점에서 그녀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벵골 아트 스쿨과 암리타 쉐르길, 인도인들이 근대 미술을 사랑하는 이유는 아마도 영국 식민 시절, 인도 고유 양식을 발전시켜 민족 자부심을 고취시켜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