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찾기 어려워진 구멍가게를 기억하시나요? 영세 상인이 운영하는 소형 점포를 뜻하는 구멍가게는 대형 할인마트, 편의점, 전자상거래 등이 늘어나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어, 삼거리 슈퍼, 행복 상회와 같은 이름들이 이제는 추억 속에서나 찾는 이름이 되었죠.
그러나 인도에는 '키라나'라고 불리는 구멍가게들이 여전히 건재합니다. 저 또한 단골 키라나에서 식품과 잡화를 주로 구입하곤 하였는데요, 제가 전화로 주문을 할 때면, 자주 배달하는 물건을 기억하고 있다가 주문할 물건을 미리 척척 읊어 마치 AI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직접 가게에 들린 날에는 차 한잔 하고 가야지 하며 간식까지 내어줘 마치 부모님 같은 모습을 보여주던 곳이 바로 이 키라나였습니다.
[인도를 주름잡은 키라나]
인도 식품, 생활용품 소매 시장의 약 90%는 키라나가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닐슨에 따르면 2020년 2월 기준 인도에 약 6,660만개의 키라나 매장이 있다고 합니다. 인도에 이렇게 많은 키라나가 건재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4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 현금 결제 위주인 키라나에서는 외상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수입이 일정치 않은 일용직 노동자들이나 저소득층이 키라나에 의존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이죠.
둘째, 작은 물품 하나라도 손쉽게 구매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대형마트보다는 가까운 키라나에서 그때그때 구매하는 것이 신선하고, 경제적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많기 때문인데요, 특히 농촌 지역은 약 80%가 냉장고가 없을 뿐 아니라, 있더라도 잦은 정전 등으로 사용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편안함과 신뢰입니다. 키라나 주인들은 대게 동네 친구, 삼촌, 또는 친구의 부모님이기 때문에 물건을 구입할 때 안정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키라나의 높은 수익률을 꼽을 수 있습니다. 키라나는 대게 본인의 집 또는 임대료가 낮은 작은 규모 점포에서 대체로 가족이 운영하기 때문에 고정비가 낮습니다. BCG에 따르면 키라나의 임대료, 인건비, 기타 운영비 등은 총 매출의 약 7%에 불과한 반면, 로컬 기업의 현대식 슈퍼마켓은 15~20%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죠.
[대형 유통업체들을 녹다운 시킨 키라나]
이렇게 강점을 보이는 키라나를 더욱 뒷받침 해준 것에는 정부의 보호도 한 몫을 했습니다. 1991년 본격적인 경제 개방 이후에도 외국인투자는 매우 점진적으로 개방되었는데요, 특히 소매업 분야는 바로 이 키라나를 의식한 정치인들의 반대가 거세 매우 더디게 진행되었습니다. 2006년 단일 브랜드 소매업에 한해 정부 승인 하에 제한적인 개방이 허용된 것을 시작으로 2012년에 이르러서야 멀티 브랜드 소매업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가 허용되었죠. 또한 이러한 개방 이후에도 전통 강자 키라나의 지배력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였는데요, 프랑스 유통업체인 까르푸가 2010년 인도에 진출했다가 4년만에 철수, 독일 유통그룹 메트로가 B2B 영역에서만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수준인 것이 대표적이죠. 로컬 기업의 성적표도 좋지 못합니다. 대표 그룹인 타타, 릴라이언스, 비를라 등이 유통체인을 출범했지만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지는 못한 상황입니다..
[과도기에 돌입한 키라나]
그러나 전자상거래가 가속화 되면서 키라나의 전통적인 강점들도 도전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2017년 세제 개혁 이후 전자 결제가 빠르게 도입되기 시작하였고, 대형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파격적인 할인 등을 내세워 소비자들을 빠르게 흡수했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감지한 키라나도 변신을 모색하였고, Gofrugal tech, max whole sale, Coutloot 등 로컬 업체들은 키라나가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고 배송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도 전자상거래 시장의 양대 산맥인 아마존인디아와 월마트가 인수한 플립카트도 키라나를 경쟁 대상이 아닌 협력대상으로 접근하고 있는 상황이죠.
[키라나 2.0의 탄생?]
이러한 키라나의 디지털화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민 기업이 있는데요, 바로 페이스북과 인도 최대 민간기업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입니다. 2020.4.21일 페이스북이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의 통신 인터넷 부문 자회사인 '지오플랫폼'의 지분 9.99%를 57억달러에 인수한 것인데, 양사는 향후 지오 플랫폼의 식품 전자상거래 서비스인 지오마트와 왓츠앱 연계 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주문과 결제를 진행하고 키라나에서 해당 상품을 픽업하는 서비스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페이스북이 2014년 2월 190억달러에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인 왓츠앱을 인수한 이래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투자인 동시에 해외 투자로는 최대 금액을 기록한 점, 코로나19로 투자가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에도 빠르게 진행된 점 등에서 키라나 공략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2020년 5월 기준 지오플랫폼은 가입자 수 약 3.8명의 인도 1위 통신서비스 사업자를 기록하고 있고, 페이스북과 왓츠앱 또한 인도 사용자수가 각각 3.3억명, 4억명으로 세계 1위를 기록하는 등 공룡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향후 키라나의 변화가 더욱 가속화 될 것이라는 기대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구멍가게이지만 인도의 구멍가게 키라나는 버전 2.0으로 거듭날지 잘 지켜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