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은 보살인데 속마음은 야차 같다', 라는 표현을 혹시 들어보셨나요? 우리나라에서 야차는 잔인하거나 악독한 짓을 하는 악당, 또는 아주 무서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상통하지요. 이 야차의 유래가 바로 인도라는 점을 알고 계신가요?
[야차의 기원은 야크샤]
야차는 인도 고대 경전 베다에서부터 기록에 나타나는 야크샤가 그 기원입니다. 산스크리트어 야크샤를 음역한 것이 바로 야차이지요. 인도 마우리아 왕조 당시에 제작된 야크샤 및 야크샤의 여성 형태인 약시니 조각상이 인도 역사상 돌로 제작된 최초의 석조 유물일 정도로 야크샤는 인도인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야크샤는 꾸베라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지요. 초기 예술에서 야크샤는 전사 또는 포동포동한 난쟁이의 모습, 약시니는 풍만하고 아름다운 젊은 여성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아크샤와 약시니는 재물을 보호하고 더욱 번성하게 하는 부의 신, 보물의 수호신, 풍요의 여신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풍요는 다산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약시니가 손으로 나무줄기를 잡거나 발로 꽃을 건드리기만 해도 꽃이 핀다라고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의 수문장]
독립 이후 인도는 다양한 정부 기관을 건설하게 되는데요, 특히 중앙은행은 뉴델리, 마드라스, 나그푸르 3개 도시에 걸쳐 건설이 진행되면서 위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는 국민들에 광범위하게 노출되는 공공건물이야 말로 인도 예술가들의 활동의 장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위원회에 제안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문화예술진흥법으로 대형 건축물 신, 증축 시 건축 비용의 1% 이하 범위에서 회화, 조각 등을 설치해야 하는 소위 1%법이 있지만 1995년에나 의무화가 된 것을 비교해보면 1947년 독립 직후에 이런 아이디어를 추진한 것이 매우 놀랍죠.
위원회는 뉴델리 사무소 정문 양쪽에 조각상을 설치하기로 계획하고 당시 위원회 회장인 JRD 타타가 저명한 예술가이자 비평가인 칼 칸달왈라의 조언을 받아 야크샤와 약시니 조각상을 세우기로 결정합니다. 야크샤와 약시니야말로 산업을 통한 번영, 농업을 통한 번영이라는 중앙은행이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가장 적합한 신이기 때문이었죠. 인도 현대 대표 조각가인 '람 킨카르 바즈(Ram Kinkar Baij)'의 주도하에 야크샤는 마투라 박물관의 형태를 차용, 약시니는 캘커타 박물관의 형태를 차용하여 1954년 본격 제작에 착수된 작업은 13년이나 지난 1967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정문을 마주하고 왼쪽이 야크샤, 오른쪽이 약시니가 위치해 있는데 야크샤는 톱니바퀴(pinion)와 돈가방, 약시니는 파리채(Chaturi)와 꽃봉오리를 들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파리채인데요, 인도에서 말총 등으로 만든 자루 달린 파리채는 권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야크샤의 이중적 의미]
야크샤와 약시니는 일반적으로 재물, 풍요로움, 자비를 상징하지만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등의 문화에서 악의적 특성의 모습으로도 발현되고 있습니다. 애초에 이 신들은 수호신의 성격이 컸기 때문이지요. 힌두 경전에서 약시니의 모습은 36가지로 묘사되어 있는데요, 보물의 행방을 밝혀주고 질병으로부터 보호해주며, 원하는 과일을 생산하도록 도와주는 한편, 한눈으로 사람을 마비시키고, 사람을 꾀어 피를 마시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약시니의 캐릭터는 인기있는 영화 소재로 많이 쓰이기도 하였죠. 힌두교에서 야크샤는 india 종종 변덕스럽거나 무시무시한 전사로 묘사되기도 하고, 불교와 자이나교에서는 특히 냉혹한 정복자 또는 호위무사 등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불교 문화가 많이 전파된 우리나라 또는 일본에서 야크샤는 크고 거대한, 또는 무서운 모습으로 자리잡게 된 것 같습니다. 일례로 일본에서 크게 흥행한 이누야사라는 만화 또한 이누, 즉 '개'와 야사, 즉 괴물 또는 요괴라는 야차를 합한 것이지요.
어떠신가요? 재물을 번성하게하는 동시에 사람을 잡아먹거나 유혹하여 죽이는 이중적인 모습을 모두 지닌 야크샤와 약시니를 중앙은행 입구에 세운 것은 인도인들이 돈을 대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돈, 재물은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힘을 가진 동시에 탐욕과 파멸의 길로 이끌기도 하기 때문이죠. 무서운 돈의 신 보다는 자비롭고 풍요로운 돈의 신이 곁에 함께하길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