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계연도란, 세입과 세출을 구분하기 위한 일정 기간, 즉 예산의 집행 단위를 의미하지요. 기간은 1년이지만 그 시기는 각 국가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이 1월~12월을, 인도를 비롯해 영국, 일본 등이 4월에서 이듬해 3월, 호주, 이집트, 스웨덴, 필리핀 등이 7월에서 이듬해 6월, 미국, 태국, 미얀마 등이 10월에서 이듬해 9월을 회계연도 기간으로 삼고 있습니다. 회계연도 호칭법도 다양합니다. 이듬해까지 걸쳐있는 경우 종료시점을 기준으로 호칭하기도하고, 시작 시점의 해당연을 호칭하기도 하는 등 매우 다양하지요.
그런데요, 이 회계연도를 경제지표의 기준으로까지 삼고 있는 독특한 국가가 있습니다. 바로 인도인데요. 예를 들어 인도에서 2019년 1분기 GDP라고 하면 2019년 4월에서 6월까지의 GDP를 의미하죠. 그런데요. 인도를 제외한 국가들이 모두 1~12월로 경제지표들이 맞춰진 만큼 국가 간 통계자료 비교에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실제로 일부 경제기관이나 언론에서 인도의 1분기에 해당하는 4~6월을 2019년 2분기라고 호칭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곤 하는데요. 때문에 인도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일반인들에게 인도 통계 숫자는 이상하다는 부정적 인식이나 혼돈을 초래하기도 하죠. 인도가 왜 회계연도를 기준으로 경제지표도 발표하게 되었는지, 그 비밀을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힌두력의 새해]
인도의 회계연도가 자리잡게 된 이유에는 사실 여러 가지 설들이 존재하는데요, 가장 오래된 것부터 꼽자면 바로 전통 힌두력 또는 인도 여러 지방에서 독자적으로 사용하는 지역달력에서 '베샤크' 또는 '우가디'라 불리는 새해가 통상 4월에 시작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동부지역에서는 새해의 시작이자, 모든 사업활동의 시작점으로 여겨 '할카타(Halkhata)라는 풍습을 치르는 중요한 날이기도 한데요. 새 회계장부를 개시하고, 고객의 밀린 정산금을 청산하고 서로 과자 및 선물을 교환하며 축하하는 것이죠. 할카타는 벵골어로 '새 노트를 연다'라는 뜻입니다.
[영국의 잔재]
또 다른 설명은 바로 영국의 달력 역사 및 인도의 영국 식민에 있습니다. 영국은 1752년 이전 율리우스 달력을 고수해왔고 새해 첫날은 3월 25일 이었습니다. 그러나 율리우스 달력의 1년과 지구 공전주기가 정확히 맞지 않아 128년에 하루씩 늦는 오차가 발생였죠. 그래서 당시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그간 누적된 10여일의 오차 날짜만큼을 당해 달력상에서 삭제하고 향후 오차를 줄인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사라진 날짜만큼의 세금 수입을 잃는 것을 용납할 수 없던 영국 정부가 세금 연도의 시작을 3월 25일에서 4월 6일로 미루면서 4월이 회계연도의 시작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후 대영제국이 전성기를 맞이하며 세계 각지의 식민지와 통치 지역을 거느리게 되는데, 당시 식민 국가들의 회계, 예산 관련 서류들을 모두 영국 황실의 승인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인도를 비롯해 대영제국의 영향을 받은 뉴질랜드, 캐나다 등이 4월에 시작하는 회계연도를 현재까지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일부에서는 인도의 경우 과거 동인도 회사가 거점으로 삼은 인도 동부 캘커타, 당시의 콜카타의 힌두 새해와 영국의 회계연도가 일치하여 매끄럽게 정착하게 되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농업계절의 특성]
또 다른 흥미로운 근거는 인도의 농업계절에 있습니다. 인도에는 두 가지 농업 계절이 존재하는데요, 바로 '카리프'와 '라비'입니다. 카리프 시즌은 4월에서 9월까지로 통상 이 기간에 재배되는 작물을 여름 작물이라고 부르고, 라비 시즌은 10월에서 3월까지로 겨울 작물이 재배되는 기간이지요. 즉, 인도의 농사는 4월에 시작해서 3월에 끝나는 셈인데요. 이 때문에 영국 식민 독립 이후에도 인도정부가 계속해서 회계연도를 각종 경제지표의 기준으로 삼고 이를 변경하지 않게 됩니다. 인디라 간디 당시 내무장관과 브라만다 레디(brahmananda reddy) 6차 재정위원회(1974~79년) 회장이 인도 경제가 농산물 수확에 크게 좌우되는 점을 고려해 연간 작물 수확량 평가가 완료되는 시점인 3월 31일을 경제 전체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날짜로 선택한 것이 바로 그것이지요. 이러한 정부의 선택 이면에는 인도의 축제시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일각의 평가도 존재합니다. 인도 대표 대서사시 라마야나에서 유래한 축제가 이어지는 10~11월 기간을 신성한 기간으로 여겨 결혼식의 약 80%가 집중되기도 하고, 축제 휴일 등으로 12월에 회계장부를 마감하는 것이 부담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이유로 회계연도 변경은 인도 정부에게 풀기 힘든 숙제로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1984년부터 회계연도 변경논의가 지속되고 있지만, 변경에 따르는 오랜 시행착오, 사회적 비용 등으로 논의에만 그쳤는데요. 2017년 마드야프라데시주에서 시범 도입을 전격 발표했지만 이행에는 실패하고 말았죠. 각종 세금 문제와 직결된 부분인 만큼, 앞으로 인도 경제 지표를 볼 때는 회계연도의 특수성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